이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컨텐츠’ 커넥터스 기사 중 “왜 화물차도 없이 운송업을 하는 주선사가 생긴걸까(25.09.04)”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내용입니다. 원문이 궁금하신 분들은 네이버 검색창에서 ‘커넥터스’를 치시고 기사를 검색하세요!
고속도로를 달리다 화물차 옆면의 ‘OO로지스’라는 로고를 볼 때, 우리는 거대한 운송 제국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그 로고는 신기루에 가깝습니다. 그 트럭은 OO로지스 소유가 아닐 확률이 높고, 심지어 OO로지스는 단 한 대의 트럭도 없을 수 있습니다. 화물 운송 산업의 실상은 이처럼 우리가 가진 상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업계의 고질적인 ‘다단계 운송 주선’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화물 정보망 플랫폼에서 배차를 할 수 있는 운송사를 제한하겠다는 것. 이 조치는 ‘전국24시콜화물’, ‘원콜’, ‘화물맨’ 등 주요 3대 플랫폼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하며,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업계의 복잡한 구조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복잡한 화물 운송 산업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당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상식을 뒤엎는, 놀랍고도 의외의 진실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충격적 진실: 대부분의 ‘운송사’는 자기 화물차가 없다
‘운송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수십, 수백 대의 화물차를 직접 보유하고 운영하는 거대한 회사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23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운송사의 평균 직영차량 보유 대수는 고작 1.8대에 불과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전체 운송사의 64.9%가 직영차량을 단 한 대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일부의 예외가 아니라, 업계의 표준 운영 모델이 ‘자산 없는 운송’으로 완전히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화물을 운송할까요? 해답은 ‘지입차’와 ‘용차’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운송사는 개인 차주와 계약을 맺은 차량(지입차)을 활용하거나, 화물 정보망을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차량을 수배(용차)하여 운송 업무를 수행합니다.
• 지입차(위수탁계약 차량): 사실상 개인사업자인 차주가 운송사 번호판을 달고 고정된 일감을 받는, 프랜차이즈와 유사한 형태
• 용차: 필요할 때마다 화물 정보망을 통해 일회성으로 차량을 섭외하는, 화물업계의 ‘콜택시’나 ‘우버’와 같은 개념
대규모 차량을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는 데 따르는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이처럼 차량을 소유하지 않는 ‘자산 경량화’ 방식이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처럼 운송사가 직접 차량을 운영하지 않게 되면서, 화물 배차와 관리를 전담하는 또 다른 플레이어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바로 ‘주선사’입니다.
2. 의외의 역할: ‘중간 마진’만 챙기는 줄 알았던 주선사의 항변
화물 운송 과정에는 화주(화물 주인)와 차주(운전기사) 사이에 ‘주선사’가 존재합니다. 이들은 종종 “중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수수료만 챙기는 존재”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흔히 주선사를 단순히 ‘중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마진만 챙기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현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선사는 기사 관리, 차량 배차, 긴급 대응, 센터와 기사 사이의 소통 등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할이 빠지면 결국 화주사 물류센터 직원이나 플랫폼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 주선업 면허를 보유한 운송사 대표 A씨
A씨의 말처럼 주선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수많은 차주 중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배차하고,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대응하며, 화주와 차주 사이의 복잡한 소통을 중재합니다. 결국 주선사는 복잡한 운송망의 보이지 않는 윤활유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을 관리하는 리스크 매니저입니다. 이들의 수수료는 단순 중개료가 아닌, 이 운영 책임에 대한 대가인 셈입니다.
3. 흐릿한 경계: 운송사와 주선사는 어떻게 구분이 무의미해졌나
오늘날 화물 운송 현장에서 ‘운송사’와 ‘주선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둘의 경계가 매우 모호해졌기 때문입니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 B씨는 “직영차량 없이 운영하는 운송사가 너무 많아, 업력이 오래된 일부 회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부 ‘주선사’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합니다. 앞서 살펴본 통계가 이 말을 뒷받침합니다. 법적으로는 ‘직접운송의무제’라는 제도가 존재합니다. 이 제도는 운송사업자가 계약 물량의 최소 50%를 자신의 차량(자차)으로 운송하도록 강제합니다. 하지만 1장에서 살펴봤듯 전체 운송사의 64.9%가 직영차량이 한 대도 없는 현실에서, 이 규제는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요? 이는 법과 현실의 완벽한 괴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모호함은 업계 용어의 의미 변화에서도 드러납니다. 과거 ‘지입차’는 운송사 소유의 트럭을 기사가 비용을 내고 빌려 쓰는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사가 자신의 트럭을 가지고 운송사와 계약하여 고정 물량을 받는 형태까지 포괄하는, 훨씬 넓은 의미로 쓰입니다. 이처럼 핵심 용어조차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될 정도로 경계가 허물어진 것입니다.
결론: 누가 진짜 책임을 지는가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통해 화물 운송 산업의 맨얼굴을 마주했습니다. 화물차 없는 운송사가 대다수라는 현실, 중간 마진만 챙기는 줄 알았던 주선사의 보이지 않는 역할, 그리고 둘 사이의 무너진 경계까지.
이제 디지털 플랫폼과 정부 정책이 이 복잡하게 얽힌 산업 구조를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시점에서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단순히 ‘누가 트럭을 소유하는가’를 넘어, **‘누가 진정으로 운송의 책임을 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과연 기술과 정책은 얽히고 설킨 이 운송 시장을 어떻게 바꿔놓게 될까요? 그 변화의 중심에서 우리는 진짜 책임의 주체를 찾아낼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